[1] 복지는 악(惡)인가? 선(善)인가?

  • 김용식 기자
  • 발행 2022-01-13 15:13
  • 4,486
국가의 존재이유는 헌법의 실현이라 할 수 있다.
보수주의인가? 진보주의인가?

복지는 악(惡)인가? 선(善)인가?

이데올로기에 터잡은 정치체제는 크게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로 나누고 자유주의는 다시 고전적 자유주의와 수정자유주의(new liberalism)로 나눈다.

이데올로기는 조직된 정치적 행동에 대한 토대를 제공하는 일관성 있고 논리 정연한 관념들의 집합체로서 이념의 논리를 말한다. 이러한 이념에 기초하여 민주주의냐 사회주의냐를 선택하게 되고, 민주주의를 선택하게 되면 다시 자유주의 또는 보수주의로 나누어지게 되며, 어떠한 정치체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국민(시민)의 권리의무가 강화되기도 하고, 약화되기도 하며, 살만한 세상과 헬(hell)조선이 되기도 한다.

철지난 사회주의는 논하지 않기로 하며,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를 논하기로 한다.



▲ 갈무리 나무위키/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가장 극명한 대립이 복지분야에 있어서 충돌이 가장 많다. 실제로 선진국일수록 복지에 대한 예산이 국가의 예산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보수주의(conservative)는 전통적 보수주의와 온정주의적 보수주의(nobless oblize)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온정주의적 보수주의도 그 뿌리가 보수주의이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고 할 것이다.

먼저 자유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와 수정자유주의를 말할 수 있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보장을 하고 사인간의 행위에 개입을 하지 말라”가 주된 이념이다.

이에 반해 수정자유주의는 “고전적 자유는 굶주릴 자유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수정자유주의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장하게 된다.

수정자유주의가 등장하게 된 배경은 1929년 경제대공황을 맞게된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의 소극적 자유(freedom from to starve, 굶주릴 자유에 불과한 형식적 자유의미, 고전적 자유주의를 의미)의 반성적 고려차원에서 등장하면서 “자신이 진정하게 원하는 것을 실현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국가가 실현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국가의 개입필요성”을 강조하게 되면서 수정자유주의는 시작된다.

어느 사회든 마이너리티(minority, 다른 사람들과 불평등한 대우를 받게 되는 소수자 의미)는 존재한다. 국가는 이들에게 우리 헌법이 추구하는 “모든 국민에게 인간다운 삶”을 살수 있는 필요 최소한의 여건을 마련해 주기위한 방법으로 선거를 통하여 지도자를 선출하고 정권을 획득하기 위한 정치인들은 선거 때마다 “인간다운 삶을 실현할 수 있는 복지정책”을 카드로 들고 나오게 된다.

국가의 존재이유는 헌법의 실현이라 할 수 있다.

기자의 제목이 다소 무거우니(복지는 악인가? 선인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쉽게 풀어나가기로 한다.

국가의 존재이유는 헌법의 실현이다. 헌법의 목표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즉, 대한민국 국민이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국가가 책임지고 보호를 하는 것을 말할 수 있다.


▲ 갈무리 다음 블러그/ 국가의 목표는 "요람에서 무덤까지"이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헌법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이 것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삼권분립을 기초로 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는 것을 수단으로 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이념을 채택하여야 하는지가 문제 되는데, 사회주의는 논외로 하기로 하면 자유민주주의의 체제하에서는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로 나눌 수 있다.

보수주의는 필연적으로 “국가는 개인의 영역에는 간섭하지 말라”를 모토(moto)로 삼게 된다. 이에 반해 진보주의는 “국가는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으면 시장실패가 되므로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는 국가 개입설을 주장하게 된다.

보수주의가 타당한지, 진보주의가 타당한지에 대해 지겹도록 논쟁(論爭)을 하고, TV에서는 하루종일 싸움질(?)을 한다.

보수주의인가? 진보주의인가?

2자녀(미성년)가 있는 40대의 젊은 맞벌이 부부가 아이들을 태우고 자동차로 여행을 가다가 불행한 교통사고로 앞좌석에 앉은 젊은 부부만 사망을 하고 미성년자인 2아이는 생존했다고 가정을 하면, 보수주의의 논리에 의하면 젊은 부부의 2자녀는 “자기 스스로 삶을 살아가야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미성년자인 2아이가 미래를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이 것이 보수주의의 문제점으로 지적을 받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 갈무리 시선뉴스/ 복지는 진보주의의 주장이 타당하지만 항상 "증세" 문제로 보수주의의 장벽을 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진보주의의 논리에 의하면 2자녀가 “스스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국가가 후견적 견지(堅持)에서 개입”을 하게 된다.

기자의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진보주의의 논리를 지지한다. 미성년인 2자녀는 성년이 되어서 “스스로 자기의 삶을 살아갈 수 있를 때 까지 국가가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한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기자가 극단적으로 가정을 한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기조(基調)는 근본적으로 바뀌지가 않는다. 그 이유는 자신이 보수주의를 택하면 정치체제와 시장경제체제, 복지체제 등이 일체가 되어 유기적으로 작동하게 되는 원리 때문이다.

무조건의 지지와 무조건의 선택처럼 나쁜 것이 없다. 기본적으로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보수주의를 선택하게 되고,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 깨어있는 지식인이 곡학아세(曲學阿世)하지 않는다면 진보주의를 선택하게 되기 때문이다.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지는 오롯이 독자의 몫이고, 이는 대선과 지선에서도 똑같은 논리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울림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용식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