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민주주의 정치체제속에 있다.
퇴보하는 지방민주주의
자유 민주주의 정치체제속에 있다.
정치체제는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와 비민주주의 정치체제로 분류할 수 있다.
민주적 정치체제는 자유민주적 정치체제를 말하며, 자유민주적 정치체제가 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를 철저히 보장하고 다수의 지배에 의한 민주주의를 말한다.
즉, 민주적 정치체제는 다수의 전제정치(專制政治)인 폭민정치(暴民政治)가 아니라 ‘자유 없이 민주주의 없다는 기본권 보장을 위한 법치주의’를 의미한다. 전제정치는 지배자1인이 국가의 모든 권력을 독점하여 행사하기 때문에 독재정치와 폭민정치로 치달리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민주적 정치체제는 공적영역은 민주주의 원리가 적용되고 사적영역은 자유주의가 적용되게 된다.
다수결로 결정해야 할 경계는 사적영역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을 말하므로 함의(含意)는 ‘공적영역에서는 다수결에 의한 집단정치 사적영역에서는 개인의 자유보장을 위한 타협의 정치’를 의미한다.
비단, 중앙정치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정치도 이에 해당함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고 할 것이다.
여기서 공적인 영역은 다수결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중앙정치가 아닌 지방정치도 공적인 영역은 다수결로 해결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붙게 된다.
우리가 중앙정치에서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 표결을 하는 이유는 아직 다수결로 해결하는 방법보다 더 나은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다수결은 첨예하게 대립하는 경우 과반수를 넘는 경우에는 정당성을 갖게 된다.
그러나 다수결에 의해 반대의사를 표시한 경우 반대를 한 소수는 철저히 그 들의 주장이 외면되는 결과가 발생하기 때문에 소수파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대화와 타협이 필요한 것이다.
특히 지방정치는 의원 및 단체장이 그 지방에 거주를 하기 때문에 누구보다 그 지방의 현안문제와 시민의 어려움에 대해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자주적으로 현안에 대해서 해결수 있다.
이런 점에서 다수당인 더불어 민주당이 의회주의의 원칙인 ‘다수결을 고집’ 할 것이 아니라 소수파인 국민의 힘의 의견도 귀 기울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퇴보하는 지방민주주의
고소, 고발을 보면서 김포시의 지방민주주의는 후퇴를 의심하게 된다. 과연 자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없는 것인가?
김포시는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인가? 비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인가? 의문부호가 따른다. 비자유민주주의의 등장배경은 20세기 말에 공산주의와 군부독재 붕괴로 등장하게 된다.
비민주적 정치체제는 민주주의제도를 취하고 있지만 권위주의형태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특징인데 사무엘 헌팅턴(Samuel Huntington)과 아담 쉐보르스키(Adam Przeworski)는 형식적으로 민주주의 시험대는 선거에 의해 선출된 선출직은 선거의 의미를 확대해석하여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을 사용하여 측근정치로 변질되는 단점이 있다고 한다.
김포시의 문제는 김포시장, 김포시의원 등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므로 해결을 위해서는 어떤 대안으로 해결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
문제는 사람 또는 환경이 만든다. 환경에 대한 인과관계도 결국에는 사람이 만들게 되므로 문제는 사람이 만든다고 할 것이다.
사람이 만든 문제는 사람이 풀 수 있다. 김포시 의회도 마찬가지다. 산적해 있는 지하철 5호선 연장 또는 GTX-D의 유치, 대학병원의 유치 등은 각 당의 당리당략(黨利黨略)을 배제하면 김포시의 의원 및 단체장이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도 제시할 수 있다.
김포시의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야(與野)가 따로일 수 없다. ‘여당은 대화와 타협의 자세로 야당의 양해를 구하고’, 야당은 ‘야당이 여당 좋으라고 협조하냐?’가 아니라 시민의 입장에서 시민을 위한 협조와 양해가 필요한 때이다.
지금처럼 여당과 야당이 첨예하게 대립만 한다면 더불어 민주당의 후보가 시장에 당선이 되든, 국민의 힘의 후보가 시장에 당선이 되든,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지하철 5호선의 연장, GTX-D, 대학병원의 유치는 할 수 없다.
기자도 김포시민이다. 고소고발을 취하하고 여당과 야당의 대화와 타협으로 김포시의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보고싶다. 당리당략에 의한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 밀어붙이기식의 은폐가 아닌, 풀뿌리 민주주의의 작은 희망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가 아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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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식 기자 다른기사보기